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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현대적’인가?

• 글쓴이: 경제지식네트워크  
• 작성일: 2019.08.19  
• 조회: 473

Why are we modern?


“전반적으로, 삶이란건 그 어떤때보다 좋습니다,” P.J.오루크는 그의 저서인 ‘세상의 모든 문제들’에 이렇게 썼습니다. “만약 당신이 과거에 그 어떤 기쁨이 넘치는 황금기가 있어서 그 때로 순간이동하자고 한다면 한 단어만 말하고 싶군요: 치과.”


스테판 데이비스의 ‘부의 폭발: 현대성의 근원과 본질’은 왜 우리가 치과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과거는 그렇지 못했는지 설명 해줍니다. 과거의 몇몇 사람들은 예리하고 경쟁력 있긴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2세기 로마, 송나라, 아바스 이라크 등이지요. 이 세게의 문명들은 네덜란드와 영연방이 18세기와 19세기에 이루었던 것 – 데이비스의 말을 따르자면, ‘현대성’에 이은 산업화- 을 이룰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왜 그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 이 놀랍고 흥미로운 책의 한 부분입니다.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왜 영국은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루크의 ‘치과’는 당연히 많은 부분들에 대한 예시일 뿐입니다. 데이비스가 중국의 왕조들과 스코틀랜드 철학자들 그리고 계몽된 칼리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앞서 그는 두가지 연관성을 지적합니다. 첫번째, 우리가 지금 사는 방식 – 대략 지난 250년 동안 – 은 그 전의 것들과 완전 다르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그러한 차이가 몇가지 특정한 성격을 띤다는 것입니다. 그는 역사학자로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책에서 과학자 스티븐 핑커가 주장한것에 대한 반례들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그래프나 도표가 아닌 단순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자료보다는 스토리에 감동된다는 전제 하에서, ‘부의 폭발’은 ‘선한 천사’들이 설득하지 못한 부분들을 맡아 설명합니다.


물질적으로, 현대성은 열의 네명의 아이들이 사춘기 이전에 더 이상 사망하지 않아서 우리의 수가 더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늘어난 인구는 너무 잘 살고, 세계 인구의 다른 부분들에서 세계은행이 부르는 ‘절대적 빈곤’은 수십년 동안 돌처럼 굴러 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제는 집약된 성장으로 뒷받침되고 있고, 이는 성장을 위해 생산에 투입되는 것들이 더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8세기 전에는 모든 경제성장은 널부러져 있었고, 이는 생산에 투입되는 것보다 산출량에 더 의미를 두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식민지주의나 강도등을 낳았죠.


우리 대부분은 “인간 역사에서 처음으로 영국의 마을의 인구가 통계로 5만을 넘겼었던” 1851년에나 등장한 개념인 도시에 삽니다. 현재의 브렉시트 난리에서 보이듯,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정부들은 놀라울정도로 경쟁력이 있습니다. 로마의 집정관이나 중국의 지배자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화이트홀 궁전에 선다면, 데이비스가 ‘보편 복지’라고 부르는 우리가 어떻게 부정부패의 부재와 공공 기관과 설립을 달성했는지 놀랄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예외들을 제외하고 정부는 역사적으로 착출하는 초포식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던 정부들 (예를 들어 상당 기간의 로마나 중국) 또한 부패와 넘쳐나는 후견주의로 뒤덮였죠.


우리는 우리의 가장 계몽되고 교양있는 분들까지 포함한 모든 선조들과 도덕적으로도 다릅니다.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의 사람들은 먼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관계없는 이방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선진국과 잘 사는 개발도상국들의 대다수에서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법적, 정치적으로 동등하게 취급받습니다. 이러한 도덕 기준의 변화는 인류사에 비춰보았을 때 매우 비상한것입니다. 이를 데이비스는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재능을 바탕으로 여자가 재산보다 낮게 여겨졌던때와 주요한 권리를 가지게 되었던 때를 비교하고 (기독교 이전 로마와 중세 일본이 대표적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지는 합리성을 오히려 혐오할것으로 이야기했었던 때의 예를 들어 흥미진진하게 전달해줍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설명은 사적 자치와 노예제에 대한 계몽주의자들과 반계몽주의자들의 논쟁을 살펴볼 때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1787년 스태포드샤이어의 장인 요시아 웨지우드가 제작한 “나는 사람도 아니고 형제도 아닙니까?”라고 적힌 반노예제 메달은 인류사의 다른 그 어떤 시절에서 지적으로 불가능했을것임을 보여줍니다.


데이비스는 도덕적 저하에 대해서 언급한뒤 왜 역사적 문명들이 19세기 영국의 성공을 이룰 법 했지만 그러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책이 짧은 탓에 데이비스는 두가지의 좋은 결과를 갖고 온 하나의 사례를 들어 설명합니다. 데이비스는 영국 독자로 하여금 중국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한 송나라 (960-1279) 에 집중하는데요. 이는 현대의 부강한 중국이 왜 18세기의 유럽에서 태동한 것과는 다른 느낌의 산업적 현대성을 보여주는지까지 설명합니다.


“모든 전근대적인 사회들과 문명에서 체계적인 혁신이 제한적이고 방해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면은 다른 모든 곳들은 몰라도 중국에서는 매우 긴 시간 동안 별로 큰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주요한 혁신들로는 종이, 자기, 화약, 용광로, 외바퀴 손수레, 그리고 능력에 기반한 공직선출제도 등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야에서의 중국의 선도는 14세기까지 유지되었지만 그 뒤로는 멈추었습니다. “


송나라의 지배자들은 내국여권의 폐지(대부분의 중국 역사동안 존재했던 호구체제로서 중요한 정책 변화였습니다), 토지에서의 시장경제 (결정적인 이동권)을 허용, 부역에 의한 세무를 폐지하고 화폐를 통한 지불을 독려하는 정책등을 실시하였습니다. 내륙의 운하를 통한 거래를 촉진함으로서 강한 상인단을 꾸리기도 하였습니다. 송나라는 현대적인 형태의 집중적인 성장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농산물 생산량은 960-1279년 동안 현대 비료와 노만 볼라그의 중요한 과학적 발견이 없었던 때엔 매우 큰 업적이었죠.


그럼 송나라에서 실패한 것은 무엇일까요? 왜 산업혁명은 중국이 아닌 영국에서 일어났을까요? 역사학자들이 늘 ‘근본 원인’들을 따지고자 할 때 하듯, 데이비스는 외부의 충격과 내부의 정책을 섞어서 설명합니다. 흑사병은 주요한 원인으로서 유럽으로 가기 전 실크로드의 몇몇 지역에서는 90%이상의 인구를 없앴습니다. 그 뒤로는 남아있는 이들을 쓸어버리고 이슬람 문명의 선두 주자인 바그다드까지 샅샅이 뒤진 몽골의 침략이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몽골의 한족의 송나라에 대한 승리는 나라에 정신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중국이 몽골을 쫒아내고 다시 많은 영토를 되찾았을 때, 송나라의 정책은 약함과 패배적 이상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후의 왕조들은 몇몇의 경우에는 멍청하고 파괴적이기까지 모든 것들을 반대로 실행했습니다. 농민들은 토지를 팔 권리를 잃었고, 내국여권은 다시 도입되었으며, 보물선이라고 불리우던 많은 해양무역선들도 일부러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면 18세기에서 북서유럽과 영국이 달랐던 점은 무엇일까요? 데이비스는 대부분의 유럽 예외주의 주장 (결혼할 때 여자가 주로 연상이었던것에서부터 가축화할 수 있었던 많은 동물들로부터 기인한 잉글랜드와 로마의 법치주의까지)을 넘겨버립니다. 대신 그는 유럽이 합스부르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성 로마 제국은 신성하지도, 로마스럽지도, 제국도 아니었습니다.’) 왜 ‘화약 제국’이 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같은 기간에서 모든 세계의 상대적으로 발달된 곳 – 러시아에서부터 오토만, 중국, 사파위 이라크 까지 – 는 그랬는데 말이죠.


대신에 유럽- 특히나 서유럽은 국가들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별다른 국지적 슈퍼파워 없이,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유럽의 국가들이 경쟁자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한 유일한 길은 혁신이었습니다. 혁신의 실패는 바로 옆의 국가의 식사거리가 되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지배자나 실권자가 자본시장과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각자의 나라를 융합하는데 써왔던 조직화된 종교에 구멍을 내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그것들을 허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려하도록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군사대열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하는 대가를 치뤄야만 했죠.


그러므로 ‘현대성’은 유럽 – 특히나 영국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영국은 이미 왕권과 분리된 통치체계 (입법부와 사법부의 독립)을 가졌었고 그 당시의 시류 (많은 유럽국가들은 절대군주제를 어느정도 유지했습니다.) 에서 가장 먼저 떨어져 나갔던 것이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다른 많은 관찰자들의 머리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습니다. ‘휘그 역사’로 알려진 역사적 필연성을 각각의 국가들이 서로에게 암시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데이비스는 같은(그리고 스티븐 핑커의 노력에 의해 다시 유명해진) 시각에서 또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이 글은 https://bit.ly/2Ywhf3e를 옮긴것입니다.


저자: Helen Dale


역자: 김 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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