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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커져가는 미국 사회, 스토아학파에게서 평정 유지법을 배우라

• 글쓴이: 경제지식네트워크  
• 작성일: 2019.08.29  
• 조회: 306

Anger is Rising in America. The Stoics Taught How to Keep Your Cool


스토아학파는 분노하지 않고도 “본분”을 다 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세네카(Seneca)는 건강한 분노 같은 것은 없다고 가르쳤다.


가장 최근 NPR-IBM Watson Health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2%가 예전보다 더 화를 많이 낸다고 말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래도 평균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들보다는 더 많이 화를 낸다고 생각한다. 설문에 참여한 84%가 오늘날 미국인들이 한 세대 전과 비교할 때 더 많이 화를 낸다고 말했다.”


인기 정치인들 중에는 항상 분노한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월 스트리트 저널 (Wall Street Journal)의 조셉 엡스타인(Joseph Epstein)은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에 대해 말한다. “너무나도 진지하게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고 소신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흔들림이 없는 샌더스를 보면 옛적 스탈린주의자들이 생각난다. 그가 짧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주장하며 손을 휘저어 강조하는 것을 볼 때면, 칭얼대는 아이들 때문에 괴로웠던 옛 유대인 엄마들의 일성이 들리는 듯하다. 엄마가 보는 데서 찻주전자 좀 달그락거리지 말라고 했지!”


엡스타인은 덧붙여 말한다. “샌더스는 스탈린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성격과 고집불통을 감안할 때 스탈린 시대에 살았더라면 아마도 스탈린주의자이었지 않았을까?” 샌더스가 분노를 내려놓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그의 성공은 분노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서 얻은 것이다. 그리고 분노가 승리를 거두는 것은 비단 정치적 영역에서만이 아니다.


학과장으로 물러나라고 압력을 받은 하버드 대학 법학과 교수 로널드 설리번(Ronald Sullivan)은 대학 캠퍼스의 “분노에 찬 요구”에 대해 글을 썼다. “대학 내에서 제멋대로 날뛰는 감정이 신중한 논리를 대신하고 있다. 감정은 더 이상 증거, 분석, 경험에 구애 받지 않는다. 엄격한 주장 대신, 분노에 찬 요구가 지금의 대학 정책을 이끌고 가는 듯 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그의 저서 명상록(Meditations)에서 말했다.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예의와 친절이다. 분노에 차서 투덜거리는 존재가 아니라 힘과 용기와 대담함을 갖춘 존재다.”


분노를 키우지 말라

몇 달 전, 아내와 나는 고속도로에서 출구를 놓쳤다.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가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나가려는데, 신호등 때문에 짜증이 났다. 파란 불이 되어도 다섯 대 정도의 차만 겨우 지나갈 수 있었고, 다시 빨간 불이 되었다. 제 시간이 도착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나는 현실에 격분해서 행동이 막 나간 반면, 아내는 조용하고도 침착하게 앉아 있었다.


그 때 나는 신호등 때문에 화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엉망진창인 교통과 늦어지는 도착시간에 대해 나는 아무런 책임도 없었다. 차만 막히지 않았어도, 나는 평정심을 유지할 것이다. 틀렸다. 분노는 화를 내겠다는 내면의 결심에서 시작된다. 만약 화를 내고 싶다면, 화 낼 거리를 찾을 것이다.


순간적인 나의 동요는 난폭한 운전자의 폭발적인 분통과 동일한 것이다. 나는 신호등의 모습을 한 세상이 내 마음의 평화를 마음대로 주무르도록 권리를 내 주었다. “상황이 분노를 키울 수 있는 권리를 주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상황은 분노를 절대 조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하였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분노가 증폭되는 것을 멈추었던 그 순간, 분노는 사라졌다. 라이언 홀리데이(Ryan Holiday)와 스테픈 핸셀먼(Stephen Hanselman)은 공저 ‘매일 금욕주의를 (The Daily Stoic)’에서 말한다. “속담에 이르길, 구덩이 첫 번째 규칙은 “만약 삽질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구덩이에 빠졌거든, 더 이상 파지 말라”이다. 이는 가장 기분 나쁜 상식일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들 대부분은 대처한다고 해도 제대로 안 되거나, 먼저 화부터 치밀어 올라 계획을 세워서 뭔가 하기 전에 이미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서 오히려 더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의 기대만큼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빨리 가야 하는데, 신호등은 겨우 자동차 다섯 대만 지나가면 빨간 불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굳이 상황을 더 악화 시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을까? 애꿎게 팔을 꼬집어댄다면 당연히 멍이 들 것이다.


세네카는 분노에 대하여 어떻게 말했나

제임스 롬(James Romm)은 바드 대학(Bard College)에서 고전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는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세네카가 ‘분노에 대해 남긴 명언(On Anger)’을 새롭게 번역해서 ‘평정을 유지하는 법: 분노를 다스리는 고대의 지혜(How to Keep your Cool: An Ancient Guide to Anger Management)라는 책을 냈다. 그는 서문에서 우리에게 “가장 최근에 분노했던 사소한 일”을 떠올려 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 “당신은 상처받았다. 정말 그런가? 당신은 그 일이 있기 전보다 하루 이틀 정도 분명히 더 힘들었는가? 누군가 당신에게 무례를 범한 것이 그렇게 중요했는가?”


그리고 나서 롬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세네카는 우리의 분노를 일으킬 만한 일,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 일을 좀 더 멀리서 바라보거나 우리의 정신세계를 확장시켜서 어떻게 느끼는지 성찰하도록 권고한다. 우리가 상처받았다고 느낄 때 분노의 근원이 될 만한 자존심, 품위, 자부심 같은 것들은 한 발 물러서서 거리를 두고 우리의 삶을 본다면 결국 공허한 것일 뿐이다.” 세네카는 말했다. “당신의 분노는 일종의 어리석음이다. 쓰잘데기 없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니 말이다.”


롬은 로드 레이지(road rage: 도로에서 벌어지는 보복, 난폭 운전)를 예로 들어 어리석음의 값비싼 대가를 설명한다. “로드 레이지의 순간, 클락션을 울리고 다른 운전자에게 피해를 주며 죽이고 싶은 마음이 끓어오를 때, 영혼의 이성적 통치권은 사망의 위협을 받는다. 그로 인해, 올바른 선택과 고귀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위험에 처한다. 분노가 화염에 휩싸이는 순간, 다른 어떤 정서보다도 도덕성이 위험하다. 세네카가 보기에 분노는 가장 강렬하고 파괴적이며 저항할 수 없는 격정이기 때문이다. 마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다. 일단 분노에 사로잡히고 나면, 하강을 멈출 길이 없다.”


분노의 치료법은 인지(認知)다. “분노가 일으키는 온갖 악을 목도하고 그것들을 철저하게 따져 보라” 세네카는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분노의 결과, 분노가 야기할 피해를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나는 그 어떤 역병도 분노가 인류에게 준 피해보다 더 큰 해를 끼치진 못하였다고 말하겠다. 학살자들, 독, 진흙탕 싸움이 되는 소송, 도시의 붕괴, 멸종, 공공 경매를 통해 팔린 노예들의 삶, 건물에 던져진 횃불들, 성내의 불꽃이 아니라 국경선의 적들을 따라 희미하게 비치는 횃불 전선을 보게 될 것이다.”


분노는 화를 내는 당사자를 해친다. 세네카는 말했다. “이성과 충고에 귀를 닫고 공허한 선동에 휘둘려 무엇이 정당하고 옳은지 구분조차 할 수 없다. 분노는 무너뜨린 것 위에 산산조각으로 주저앉은 건물과 꼭 닮았다.


분노를 문 안으로 들이지 말라

스토아 학파는 분노하지 않고 “본분”을 다 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건강한 분노라는 것은 없다고 세네카는 말했다. “어떤 이들은 분노를 한쪽에 쌓아두느니 차라리 누그러뜨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분노를 건강한 방식으로 끄집어 내고, 넘쳐 흐르지 않도록 억누르며, 행동이 약화되고 마음의 힘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면서 분노를 처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선, 해로운 일들은 다스리기 보다는 막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일단 분노를 허용한 다음에 누그러뜨리기보다는 아예 차단해 버리는 것이 훨씬 쉽다. 분노는, 일단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통제자보다 훨씬 더 강해지고 축소나 제거를 허용치 않는다.”


즉, “일단 흔들리고 뒤집어진 마음은 그렇게 만든 것의 노예가 된다.” 세네카는 분노를 인지하자마자 맞서기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분노의 일침이 느껴지는 순간 내쫓는 것,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 엮이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최선이다. 왜냐하면 일단 분노 때문에 제 길에서 벗어나면, 건강하고 안전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격한 감정이 앞장서서 판단하게 되면 이성이 설 자리는 사라진다.”


시대를 관통하는 세네카의 최고 명언은 이것이다. 분노하자마자 불현듯 든 생각이 비명을 지르듯 내뱉는 정신 나간 충고를 믿지 말라. “우리는 맨 처음 생기는 이유와 맞서 싸워야 하는데, 분노의 원인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즉시 행동하지 말라. 심지어 너무나도 확연하고 명백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때로는 잘못된 것이 겉으로는 진실처럼 보인다.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루가 지나면 진실은 드러난다.”


세네카는 다른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처럼 마음을 훈련하라고 조언했다. 우리 각자는 개별적인 태풍 경보를 감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악이 첫 번째 징후를 보일 때 통제하는 것이 제일 좋다. 그리고 나서 가능한 말을 삼가고 시작을 막는 것이 최선이다. 맨 처음 감정이 일렁일 때 감지하는 것은 쉽다. 감정이 출렁이기 이전에 먼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세네카는 “분노가 시작되면 자신들에게 해롭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모든 사람들은 분노의 경계선에서 한 발 물러서려 하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분노를 신뢰하지 말라

만약 화난 자신을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면, 분명 분노하는 다른 사람도 믿어서는 안 된다. “화난 사람들의 말을 신뢰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위협하며 소란을 피우지만, 실상 마음 속에는 거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세네카는 말했다. 분노하는 정치가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격분에 떠는 대학생들은 스스로 정의롭다고 믿는다. 로드 레이지에 압도된 운전자는 스스로 옳다고 여긴다. 세네카는 그들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제정신이 아니라서 유한한 인간의 생각을 벗어난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신이 뭔가 고양되고 숭고한 것을 지향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내면에 확고한 것이 없다. 기반도 없이 커지기만 한 것은 미끄러져 산산이 조각날 것이다. 분노는 기댈 것이 전혀 없다. 분노의 근원은 탄탄하고 지속적인 것이 아니다.” 처벌을 교묘히 피하면서 화를 낼 수 있는 것이 특별한 능력인 양 믿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세네카는 분노가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서 분노를 휘두르는 사람들, 분노가 그들의 힘을 입증한다고 믿는 사람들, 손쉬운 복수가 부자의 특권인 양 여기는 사람들에게 분노에 사로잡히면 결코 권세 있다고 할 수 없으며, 심지어 자유롭다고 할 수도 없다고 내가 권면하길 바라지 않는가?” 분노에 끌리는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냉정함을 잃을 때 우리는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만약 우리 중에 충분한 숫자가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분노한 정치가들에 대한 환호는 줄어들 것이다.


용서가 치료약이다

롬은 세네카의 분노에 관한 책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을 쓸 당시는, 적어도 이 책의 대부분이 쓰였던 시대적 배경은 피비린내 나는 칼리굴라의 재위 4년 동안이었고, 세네카는 로마 상원 위원이라는 유리한 위치에서 자세히 보았다.” 우리 대부분은 순결한 성인도 아니고 칼리굴라처럼 실성한 영혼도 아니다. 세네카는 말했다. “아무리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다소 고약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 본성에는 기만적인 사고, 배은망덕한 생각, 탐욕스럽고 사악한 마음이 있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면 우리는 “서로에게 더 친절할 수 있다.” 세네카는 우리에게 다른 이들의 결점을 용서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약한 사람일 뿐이다. 우리에게 평화를 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상호간의 너그러움뿐이다.” 세네카는 항상 타인에게서 공통된 인간성을 보라고 권한다.


“인류의 대다수는 잘못이 아니라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화를 낸다. “우리 자신 또한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우리도 똑같이 잘못된 길을 가지 않았나? 이런 일을 비난한다고 해서 정말 우리 자신에게 유익이 될까?”라고 자문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 보게 되어 더 온화해 질 수 있다.”


세네카는 우리의 위선을 지적했다. “우리 모두는 내면에 왕의 기질을 갖고 있다. 스스로는 완전한 자유를 원하면서 우리에게 반(反)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우리가 걸핏하면 화를 내는 것은 무지 혹은 교만함 때문이다. 악한 사람들이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 뭐 그리 놀랄 만한 일일까?”


우리가 자신의 무지와 교만함을 망각할 때 세네카는 다시금 기억하라고 말한다. “용서하기가 힘들 때마다, 모든 이들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던 사람이 후에 자비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빈번하게 있는가?”


늘 그랬듯 오늘날 전 세계에는 세네카의 지혜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들이 널려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이 곧 우리의 일생이 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듯, “우리 안에는 육체의 격정을 야기하고 우리를 꼭두각시처럼 조정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고 신성한 것이 있음”을 흔쾌히 배울 것인가?


이 글은 https://fee.org/articles/anger-is-rising-in-america-the-stoics-taught-how-to-keep-your-cool/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저자 Barry Brownstein


역자 전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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