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정보 번역 > 정보번역

“그건 진짜 자본주의가 아니었어”라는 말을 들을 수 없는 이유

• 글쓴이: 경제지식네트워크  
• 작성일: 2019.09.04  
• 조회: 578

Why You Never Hear Anyone Say “That Wasn’t Real Capitalism”


사회주의자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사회주의 실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절대 제대로 될 수가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Der heimliche Aufmarsch (비밀스러운 행진)”은 바이마르 공화국부터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사회주의 혁명가다. 노동자들과 농부들에게 스스로 무장하고 봉기하여 기존 제도를 때려 부수라고 촉구한다.


사회주의 헌법

30년 후, 이 노래의 개정판이 동독에서 다시 나왔다. 이 때는 “Der offene Aufmarsch (공개 행진)”이었고, 더 이상 비밀리에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반영했다. 노동자들과 농부들은 (소련 동지들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아) 이미 봉기하였고, 노동자 계급 전체는 총체적으로 책임자의 위치에 있었다. 최소한, 동독 헌법에 명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은 노동자들과 농부들의 사회주의 국가다. 노동자 계급의 영도 하에 도시와 지방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의 정치 조직이다.”


굳이 사회주의자가 아니어도 “비밀스러운 행진”과 같은 노래를 들으면 즉각 본능적으로 끌릴 수 있다. 그 노래는 흥미를 유발하고 마음을 뒤흔들며 의로운 분노로 가득하다. 그러나 동독이 새롭게 정비하여 내놓은 곡은 그 에너지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원곡은 혁명적이었지만, 신곡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이다. 노동자와 농부들은 더 이상 봉기하라는 요청을 받지 않는다. 그저 더 전력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고 현 상태를 지키라는 요구만 있을 뿐이다.


원곡에서는 “그러니 옛 질서의 폐허 속에서 사회주의 세계 공화국은 일어나라”였지만, 신곡은 “오늘날 사회주의는 전 세계의 권력이다”라고만 말한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사회주의 실험 

그것은 나의 책 ‘사회주의: 결코 죽지 않는 실패한 사상(Socialism: The Failed Idea That Never Dies)’에 대한 반응과도 관련이 있다. 나는 그 책에서 사회주의 실험이 절정에 달했을 때는 찬사를 보내곤 했다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는 그것은 애초부터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고 부정해 버리는 서구 지식인들의 오래된 습관이 형성된 과정을 설명했다. 최근에 가장 보편적인 반응은 이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아주 똑같이 말할 수 있을 걸요! 다음 책은 ‘자본주의: 결코 죽지 않는 실패한 사상’ 인가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구사할 수 있는 단어가 매우 한정적인 어린 아이들이 상대방이 놀리는 말을 다시 반복해서 놀리던 놀이터가 생각난다. “아니, 그건 너겠지!


이는 숯이 검정 나무라는 격으로, 상대의 잘못이라고 지적하면서 자신이 그것을 그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여기에 맞지 않는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똑같이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들 중에 내가 책에서 언급한 사회주의 지식인들의 행동을 똑같이 했던 예가 있다면 한 번 말해 보라. 자유 시장주의를 채택했다가 이제 와서 “그것은 진정한 자본주의가 아니었다”고 부정한 나라가 있다면 이름을 알려 달라.


당신은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여러 나라들의 경제사 

그 반대인 경우는 꽤 있다. 나는 최근에 1980년에 처음 출간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의 몇 구절을 다시 읽었다. 그가 좋은 예시라고 콕 집어서 말했던 국가들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나라들의 경제 사정은 여전히 좋다는 점에 나는 깜짝 놀랐다. 프리드먼은 홍콩의 경제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대만이나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의 용들”을 거론했다. 스위스는 “자본주의의 보루”라고 묘사했다.


또한, 그 당시 영국의 새로운 수상이었던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가 영국을 더 좋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낙관적 관측을 조심스레 내놓았다. 그 책에 칠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아마도 칠레 경제에 대한 그 어떤 긍정적인 언급도 피노체트(Pinochet) 독재를 지지하는 것으로 잘못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렵 다른 데서는 칠레의 경제 전망을 낙관적으로 예측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이 40년 전이었다. 오늘날 성공적인 자본주의 국가 경제의 예를 들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까? 1980년에 프리드먼이 선택했던 것과 대략적으로 같을 것이다. 아마도 스위스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고, 홍콩과 싱가포르 또한 분명히 언급될 것이다. 아마도 대만이 같이 나올 수 있겠다. 칠레도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오늘날 영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으나 확실히 대처 이전의 영국보다는 대처 이후의 영국이 훨씬 더 좋아졌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뉴질랜드가 1980년대 친(親)시장 개혁을 한 이후로 얼마나 많이 따라잡았는지 언급할 수도 있다.


즉, 자유 시장주의자들은 지루할 정도로 요점이 일관적이다. 40년 전에 이미 칭찬했던 경제 모델이 있다면,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칭찬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지금 높이 평가하는 경제 모델이라면 40년 전에 이미 높이 평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회주의 유토피아는 이것과 정 반대다. 이것이 내가 그 책에서 자세히 기술한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사회주의 실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절대 제대로 될 수가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사회주의자가 되기란 엄청 쉽다. 오랫동안 사회주의자로 남고 싶다면, 어떤 사회주의 실험이 망했을 때 조용히 손을 떼고 기억 속에서 그것만 지운 다음, 재빨리 다음 실험으로 넘어가는 능력만 갖추면 충분하다. 최근 실패한 실험에 대한 미련은 재빨리 버리고 다음 실험에 기대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신념

사회주의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용어로 그들의 계획을 묘사할 수 있을 때가 절정기다. 그래서 가장 인기 있는 사회주의 운동은 항상 상승 중이지만 아직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거나, 아주 최근에 권력을 잡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여전히 유동적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일상적인 질문들에 대답해야 할 때, 그들이 고결하다고 여기는 이상을 바탕으로 한 체제가 실제적으로 어떻게 작동할 지 구체적인 용어로 명확하게 설명해야 할 때가 가장 곤란하다.


그래도 현존하는 사회주의 정권들은 어찌 되었든지 간에 이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 제대로 대답할 수 없으니 초기의 열정은 사라진다. 이미 언급했던 “비밀스러운 행진”과 “공개 행진” 사이의 극명한 차이가 좋은 예다. 동독 정부는 분명히 시도하려 했으나 설득력이 없었다. 그들은 옛 혁명가에 담긴 에너지를 추출해서 병에 담아 고이 간직하려 했다.


사회주의는 소설 속의 긴장감이, 뭔가를 박살내는 흥분이, 기존의 질서를 뒤엎고 그 틈새에서 새로 시작하는 들뜬 기분이 필요하다. 사회주의는 일단 체계가 형성되고 나면, 그리고 나서 그 체계가 초기의 기대에는 어림도 없이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확해지면, 게다가 그 체계는 발전의 기미조차 없다는 것이 확신으로 다가온다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자유주의는 그런 문제가 없다.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경제 모델은 보통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내놓거나 아니면 적어도 기대에 근접한 결과를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몇 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동일한 모델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우리는 정치 사상에서 흥분이나 색다른 것이나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을 찾지 않는다.

  

이 글은 https://fee.org/articles/why-you-never-hear-anyone-say-that-wasnt-real-capitalism/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저자 Kristian Niemietz


역자 전현주

댓글 쓰기 (0/1000)
 
댓글 등록
비밀번호 확인
글 작성시 입력하셨던 비밀번호를 넣어주세요.

확인
창닫기
수정하기
창닫기
• 전체 : 784 건 ( 1/66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