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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자본주의’의 역할을 잊지 마라

• 글쓴이: 경제지식네트워크  
• 작성일: 2019.09.30  
• 조회: 387

Don’t forget the role capitalism played in winning World War II


Don’t forget the role capitalism played in winning World War II


  • 전쟁 지출이 GDP를 높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단순히 ‘깨진 창문 경제학’이다.

  • 자본주의 덕분에 전쟁은 감소하고 있다.

  • 모든 사회 체제 중에서 ‘자유민주적 자본주의’는 전쟁과 거의 연관이 없다.


영국과 프랑스가 나치의 폴란드 침공을 기점으로 ‘독일 나치’에 전쟁을 선포한지도 80 년이 지났다. 우리 군대의 영웅주의와 민간의 도발적인 태도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지만, 아마도 자본주의의 예기치 못한 강력함으로, 연합국이 ‘나치’를 물리 칠 수 있었던 중요한 수단으로 평가된다.


전쟁을 향한 양측의 노력은 각국이 고품질 무기와 차량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었다. ‘나치’가 이 점에서 우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의 유럽을 정복했으며, 수많은 공장과 천연 자원을 관리했다. 나아가, 다른 모든 것들이 같은 조건이었을 때, 그들의 승리는 자명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나치’는 패배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글쎄, ‘자본주의’라는 것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싶지는 않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히틀러는 패전국의 공장과 천연 자원을 전쟁의 전리품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베를린에서 무엇을 언제 건설해야 하는지 지시했다. 기록된 바에 따르면, 그의 정부는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대했다. 많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노예였으며, 생산 할당량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가혹하게 취급되었다.


‘나치’에게 점령된 프랑스의 사례는 이러한 잔인함이 어떻게 노동자의 반발을 사고 역효과를 냈는지 보여준다. 푸조 공장의 노동자들은 새로운 상사에게 반항하여 의도적으로 생산을 방해했다(사보타주). 결과적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독일의 공장에서 일하도록 이송되었다. 분명 히틀러는 사람들을 가혹하게 대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인간을 통제하는 병든 방법일 뿐만 아니라 생산량을 늘리는데 효과도 없다.

*사보타주(sabotage): 고의적으로 사유재산을 파괴하거나 태업 등을 통해 노동자가 쟁의행위를 하는 것.


이것을 미국의 전시 노력과 대조해보자. 루즈벨트 대통령은 ‘연방 정부’로부터 총기, 탄약, 비행기 및 탱크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감시하지 않았다. 이때, 미국 자본주의의 힘이 발휘된 것이다. 정부가 발행한 ‘생산 계약’은 다른 회사들 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나아가, 회사들은 전쟁에 필요한 사항(전쟁에서 유리한)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제조 기술을 사용했으며, 그에 따라 회사와 근로자는 ‘보상’을 받았다(인센티브). 그 결과, 동맹국에게 큰 이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는 ‘소비에트 연방’의 소극적인 역할 수행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누군가의 용기와 고통이 없었기 때문에 졌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연합군이 전쟁 중에 중앙 계획을 사용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 요점은 중앙 계획에도 불구하고 ‘나치’가 패배했다는 것이다.


언급할 필요가 있는 또 다른 전쟁 관련 신화가 있다. 때때로 자본주의는 전쟁에 의존적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는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전쟁이 없으면 수요 부족으로 침체가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워릭 대학교 (University of Warwick)의 마크 해리슨 (Mark Harrison)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그러한 주장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사회 체제 중에, ‘자유민주적 자본주의’는 전쟁과 거의 공통점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사적인 이익(사유재산), 분권화된 결정, 개인적 자유(경제적 자유)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자유민주적 자본주의’조차도 전쟁에서 국가의 이익에 대한 개인의 임시 종속을 허용한 것은 사실이다. 반면에, 공산주의와 파시스트 사회에서는 ‘개인’을 넘어서 ‘국가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영구적이고 강압적인 조건이었다. 따라서,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자본주의보다 전쟁 중인 국가와 더 닮아 있는 것이다.


세상에 만연해 있지만 또 하나의 잘못된 생각은,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수요가 늘어나고 경제가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 2차 세계 대전 후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앞서 나가는 방식이 ‘정부 지출 증가’로 인해서 국가의 경제 상태가 개선될 수 있다는 증거로 인용되기도 한다. 허나, 이것은 단순히 철 지난 `깨진 창문의 법칙`에 대한 오류를 보여주는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미국이 무기에 너무 많은 비용을 소비하지 않고 군대를 전쟁에 보내지 않아도 되었던 모든 ‘비용’과 ‘경제 활동’은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덧붙이자면, 미국이 누리는 모든 경제적 이익은 승리자를 포함하여 다른 교전국 사람들은 확실히 누리지 못했다.


또한 “정부가 지출을 해야만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전쟁은 역사적으로 실마리를 던져줄 것이다. “우리는 2차 세계 대전 후 NHS(국민의료보험)를 만들었다.” 이 내용은 좌파쪽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리가 되었다. 이 주장은 Clement Attlee 정부가 직면 한 어려운 재정 상황에도 불구하고, 복지 국가를 향한 돈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허나,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Warwick의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Nicholas Crafts는 Attlee와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정책이 “아주 다른 상황”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분명한 요인은 군사 지출의 급격한 감소와 신체 건강한 남성을 노동 시장으로 이끄는 젊은이들의 귀환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전쟁 후 영국 경제를 회복으로 이끌었다.

*국민 의료 보험(National Health Service): 세금으로 운영되는 영국의 공공 의료 서비스


그래도 좋은 소식을 기억해야 한다. ‘2차 세계 대전’은 의심할 여지없이 끔찍하고 파괴적인 전쟁이었다. 허나, 전쟁은 자본주의 덕분에 감소하고 있다. 나아가, 국제 무역의 증가로 세계는 더욱 평화로워지고 있다. 간단히 말해, ‘자유 무역’의 이점으로 인해 ‘전쟁 비용’은 자연스럽게 압도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세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을 재고해 볼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한다(역사적으로 많은 사건들이 있었기에). 나아가, 역사상 가장 사악한 체제 중 하나에 섰던 사람들의 희생에 감사해야 한다. 또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지속적인 평화를 이루는데 있어, ‘자본주의의 역할’ 일부를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다.




이 글은 https://bit.ly/2nlmrFo 을 우리 말로 옮긴 것 입니다.

저자: Ben Ramanauskas

역자: 이 명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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